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귀적의 사원에 대한 연구는 10년간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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귀적의 사원의 역사에 관한 연구는 크게 고찰기, 탐색기, 열광기로 나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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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초의 연구는 고찰에 머물렀으며 위험한 일도 없었다. 학자들은 고찰을 통해 귀적의 사원에 생과 사와 관련된 보물이 묻혀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냈고, 「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는」 보물이 있다는 소문도 이때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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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뒤로는 기나긴 탐색기가 이어졌다. 귀적의 사원의 위치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모호하게 기록되어 있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학자들은 그 정확한 위치 조차 찾지 못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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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자들은 많은 인력과 물자를 사막 탐색에 퍼부었지만, 찾은 것은 깨진 비석뿐이었다. 그 비석에는 「귀적의 사원에 들어가려는 자는 반드시 목숨을 바쳐야 한다」라고 적혀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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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문장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. 누군가는 「생명을 바치는 것」이 귀적의 사원으로 들어가는 「열쇠」라고 생각했고, 또 누군가는 귀적의 사원이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는 「조건」이라고 주장했다. 하지만 결국 누구도 귀적의 사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조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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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결국 짦은 시간안에 큰 연구 성과를 얻으려는 자들은 잘못된 길로 빠지기 시작했다. 그들은 귀적의 사원을 보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았고, 연구는 점점 위험해져 결국 폐지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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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구가 폐지된 뒤에도 아카데미아에는 여전히 몰래 이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이 존재했다. 하지만 무르타다·라드카니를 포함한 7명의 학자들이 체포된 뒤로 귀적의 사원에 관한 연구는 다시 정체기에 빠지게 된다… |